홍은경 10. 21. 오후 11:00
라합은 왜 자기나라를 배신하면서 까지 이스라엘을 도왔읇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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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장은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부르는 긴 노래입니다. 반석이신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이스라엘의 패역, 그로 인한 심판, 그러나 끝내 자기 백성을 위해 원수를 갚으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느보산에 올라가 죽으라 하십니다. 33장은 죽기 전 열두 지파를 향한 모세의 축복입니다. 34장은 모세가 비스가 꼭대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120세에 죽어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히며, 여호수아가 지혜의 영이 충만해 뒤를 잇는다는 기록으로 오경이 끝납니다.
모세가 죽은 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세우시며 '강하고 담대하라'고 거듭 말씀하시고,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며 주야로 묵상하라고 명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사흘 후 요단을 건널 것을 알리고, 2장에서 두 정탐꾼이 여리고 기생 라합의 집에 숨어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3장에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담그자 상류의 물이 멈춰 선 둑이 되어 온 이스라엘이 마른 땅으로 건넙니다.
4장은 요단 한가운데서 열두 돌을 가져다 길갈에 세워 대대로 설명할 기념비로 삼는 이야기입니다. 5장에서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가 길갈에서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지키며 만나가 그치고 이 땅의 소산을 먹기 시작하고,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칼을 빼어 들고 나타나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다. 6장은 이레 동안 여리고성을 돌고 일곱째 날 일곱 바퀴를 돌아 나팔을 불고 외치자 성벽이 무너지고, 라합 가족만 구원받으며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다시 세우는 자에게 저주를 선언합니다.
7장에서 여호수아는 작은 성 아이를 쉽게 칠 줄 알았으나 36명이 죽는 패배를 당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헤렘(바친 물건)을 범해 저주 아래 있다고 하십니다. 제비로 유다 지파 아간이 지목되어 시날의 외투, 은 이백 세겔, 금덩이를 훔친 것이 드러나 가족과 함께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죽임당합니다. 8장에서 두 번째 공격은 매복 작전으로 아이를 점령하고, 에발산에 제단을 쌓아 율법을 돌에 새기며 그리심산과 에발산 앞에서 축복과 저주를 낭독합니다. 9장은 기브온 사람들이 낡은 부대와 곰팡이 핀 떡으로 먼 나라 사람인 것처럼 속여 화친 조약을 맺고, 속은 것이 드러난 뒤에도 맹세를 지켜 나무 패고 물 긷는 종이 됩니다.
10장은 기브온 조약 소식에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 등 아모리 다섯 왕이 기브온을 치려 하자 여호수아가 밤새 길갈에서 올라가 큰 우박과 함께 이기고, 여호수아의 기도로 해와 달이 멈추는 날이 있었으며, 이후 막게다 굴에서 다섯 왕을 처형하고 남부 성읍들을 차례로 정복합니다. 11장은 하솔 왕 야빈이 북쪽 연합군을 이끌고 메롬 물가에 진 치자 여호수아가 기습으로 이기고 하솔만 불사릅니다. 12장은 정복한 왕 31명의 목록, 13장은 아직 남은 땅과 요단 동편 분배, 14장은 서편 분배의 시작과 85세 갈렙이 헤브론을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입니다.
15장은 유다 지파의 기업 경계를 남쪽(에돔 경계·신 광야)에서 시작해 동으로는 소금바다(사해), 서쪽은 지중해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갈렙이 헤브론에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고 딸 악사를 기럇세벨을 치는 자에게 주겠다고 해서 옷니엘이 아내로 얻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마지막에 유다가 예루살렘의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씁니다(15:63). 16–17장은 요셉 자손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입니다. 에브라임은 게셀의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고, 므낫세는 슬로브핫의 딸들이 상속을 받고, 요셉 자손은 땅이 좁다고 불평하자 여호수아가 산지를 개간하고 가나안의 철병거를 이기라고 답합니다.
18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실로에 모여 회막(성막)을 세운 뒤 아직 땅을 받지 못한 일곱 지파에게 여호수아가 '언제까지 지체하겠느냐'며 세 명씩 땅을 측량해 오게 하고 실로에서 하나님 앞에 제비를 뽑아 나눕니다. 먼저 베냐민의 기업이 정해집니다. 19장은 시므온(유다 몫 안), 스불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지파의 기업과, 마지막으로 여호수아에게 에브라임 산지 딤낫세라가 주어지는 것을 기록합니다. 20장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가 피할 수 있는 도피성 여섯 곳을 지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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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경 10. 21. 오후 11:00
라합은 왜 자기나라를 배신하면서 까지 이스라엘을 도왔읇까요?
유경진 10. 21. 오후 7:17
개역개정 여호수아 1장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말씀에서 이율법책이 현재 십계명인가요? 그게 맞다면 주야로 묵상까진 할수있겠는데. 다 지켜 행하기는 어려울것 같은데요? 다 지켜행하는 수준은 어디까지인걸까요? 그리고 여호수아와,갈렙중 여호수아를 가나안정복 지도자로 세우셨는데요.. 성경에 갈렙 후손은 나오는것 같은데요.. 여호수아 후손에 대한 말씀은 없는지요?
권희영 10. 21. 오전 9:28
가나안에서의 첫 여리고성에서 취한 모든것에 대해서는 진멸하거나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물건으로 구별시켰습니다 첫열매로 하나님께 바쳐진 이유도 있을것같고 대표성으로가나안의 부정한것을 거룩한 것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도 묵상되어집니다 이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은어떠신지요~~~
첫 승리의 열매로 하나님께 온전히 받쳐진 것이 된게 여리고 성이죠. 여기서 온전히 받쳐진 것이라고 된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온전히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하고, 자신들도 순종했지만 전쟁의 승패는 온전히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한 것이었을 거에요. 그리고, 받쳐진 것을 취하면 그것이 패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하시기 위한 것도 있던 것같애요. 아이성 전투를 참고하면.
권희영 10. 21. 오전 9:20
수5장에서 애굽에서 나온이스라엘백성들은 다 할례를 받았지만 광야길에서 난자들은 길갈에서 할례를 받습니다 출애굽 전과후의 할례의 의미가 좀 달랐을까요 그리고 이때 같이 나온 이방민족들 자손들도 함께 할례를 받았을까요? 그랬다면 이것이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모든민족에게 복음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의미를 부여해도 될까요?
광야에서의 40년은 본래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으니까요. 하나님의 계획에서 광야는 1년 정도의 시간뿐이었고, 40년은 이스라엘의 불순종때문에 생긴 기간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수치가 됩니다. 애굽의 불순종의 기질들이 해소되지 않아서, 광야에 내몰리게 되었고, 광야에서 살았기 때문에 할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출애굽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개념으로 했을 것입니다. 애굽속에서도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소속감으로. 하지만, 출애굽후에는 애굽에서 묻은 우상숭배나 불순종의 굳은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을 것같습니다. 길갈에서의 할례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고요. 이방민족들도 함께 있으면 할례를 하도록 되어있으니. 했을 것같습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은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연결시킬 수도 있겠죠.
이화정 10. 20. 오후 6:48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갔을때 만나가 그치고 그해의 소출을 먹었다고 해서 저는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농사를 지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그게 아니고 가나안을 정복하는 7년 동안의 전쟁 기간 동안 그들은 아마도 농사를 짓기는 어려웠을거 같습니다 전쟁 후에 전리품이나 가나안 족속의 소출이나 곡식 창고에서 얻었거나 또는 화친한 민족에게서 받은 조공으로 그 시간을 먹고 살지 않았을까 추정해봅니다 이게 지금 우리 신약 시대에 우리가 영적인 가나안을 들아가서 정복 하게 될때에 신명기에서 모세가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심지아니한 포도나무와 감람나무, 세우지 아니한 성읍들을 주님께서 안겨주시는 방법으로 취하게 한다는 원리로 택할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들이 전쟁을 할 때에는 오히려 우상숭배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오히려 땅을 분배받아 농사를 지을 때에는 가나안 토착 농경신앙을 따르게 되는 것도 -신 8장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될때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뤄지는 걸 봅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는게 다가 아니라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게 훨씬 더 중요했다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정복과 정착의 과정이 '싸워서 얻었지만 결국 하나님이 거저 주신 안식'이라는 구조를 보여준다면, 이것이 앞으로 올 천년왕국에서 우리가 살아가게 될 모습과 그 영적 원리와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질문이 너무 신학적인거 아닙니까 ㅎㅎㅎ 천국왕국에서 살 것까지 생각하시다니. 그건 가서 생각하소서 ㅎ
ㅎㅎㅎ
이화정 10. 20. 오후 5:23
여호수아가 기브온위에.태양과 달을 머무르라고 한 것은 그들의 승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한 시간을 버는 것도 있겠지만 가난안 민족등이 숭배하고 있었던 천체까지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봐도 되는지요? 여러 방법중에 굳이 태양과 달을 향하여 명령을 내리고 그것들이 순복함으로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 일이 없었다 라고 성경에서 기록한 이유가 궁금해서 추론해봤습니다
놀라운 추론입니다.
이현정 10. 20. 오후 12:46
여호수아 6장에서 6일째는 매일 한번씩 일곱째는 일곱번 제사장7명 일곱번 7이라는 숫자가 반복되는 이유가 있나요?
그러게요. 6은 불완전수, 7은 완전수로 성경에서 쓰이긴 합니다.
박민지 10. 20. 오전 9:10
신명기 32-33장에서 여수룬(Jeshurun)이 나옵니다. 이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표현이며, 의미가 무엇일까요?
올곧다는 의미. 올곧은 내 백성아~~ 라고 부르신 이스라엘을 향한 애칭
이화정 10. 19. 오후 9:47
제사장들이 요단강을 건널때 맨 맨저 들어가서 백성들이 다 건너고 다시 돌 열둘을 취하러 갔을때까지 요단강 가에 머물렀다면 대체 몇시간이나 강에서 언약궤를 메고 서있었던 것일까요?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봤거나 전해들었을 여리고 성 주민들중에 단 한 가정 곧 라합 가족들만 구원받았나는 사실이 더 놀랍습니다
이화정 10. 19. 오후 9:12
수1; 13,15절에서 안식과 땅을 정복하고 차지한다는.내용에서 안식을 먼저 말씀 하시고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 하셨는데 여기서 안식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요? 성경에서 쓰인 안식이라는 의미와 같은 의미인지요?
이화정 10. 19. 오후 8:56
32장 모세의 노래가 끝나고 48절 이후로 여호와의 말씀이 이어지고 나서 다시 33장에서 모세의 축복이 이어지고 34장에서 비로소 모세가 죽는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시간적 순서와 같은 내용인지요? 배열을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목적)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노래의 엄중한 분위기와 33장의 축복의 내용이 바로 이어지는게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이 결국은 실패할 것을 알았다고 하셨는데도 축복을 하는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되었고, 자신의 불순종으로 인해 가나안땅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모세는 한마디 원망이나 불평없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라면 그렇게 하기 어려웠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은 우리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지도자에게는 훨씬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는 것 ..그래서 지도자를 위해 중보를 많이 해야겠다는 결론이..^^
이경미 10. 18. 오후 9:28
[바이블 애플] 개역개정 여호수아 13장 22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살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점술가 발람도 칼날로 죽였더라 발람이 저주를 하려다 결국 축복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발람을 왜 죽였는지요?
민수기 31장 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브올의 사건, 음행사건이 발람의 꾀로 나온 일입니다.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서 이스라엘 앞에 걸림도을 놓았다. 싯딤음행사건이 발람의 꾀로 나온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현주 10. 16. 오후 12:38
요단강을 건넌 후 할례를 베풀고 유월절을 지킵니다. 광야기간 동안에는 할례가 없었고 유월절도 지켰다는 기록이 거의 없는데, 싸움을 준비하며 무장한 백성들에게 이 시기에 행했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써의 정체성을 확고하게하기위함으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같습니다. 이 전쟁은 영적이 전쟁이기 때문에 전쟁에서 살아남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은 할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기를 지킨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사인입니다.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해서 내 절기를 지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서 절기를 지킨다는 것이 이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때에 왔다는 중요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또한, 적을 앞두고 할례를 행해서 아군의 활동을 막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을 주님께서 보호하십니다. 물론 이 보호하심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위험한 노출의 순간에 적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 그리고 이 전쟁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을 더 확신했을 것입니다.
이경미 10. 15. 오후 4:30
정탐꾼들이 요단강을 건너갔다온때도 강물이 넘쳐날때였을까요? 정탐한 뒤 얼마만에 백성들이 도화를 했지는지 기간을 짐작해볼만 한 단서가 성경에 있는지요? 요단강도하는 곡식을 거두는시에 언덕에 넘쳤던 때에 이루어졌는데 왜 강물이 불어난 시기에 건너게 하셨을까?
이경미 10. 15. 오후 1:19
므리바에서 모세의 행동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이로 인해 약속의 땅에 못들어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시내산에서 내려와 돌판을 던진행동도 이스라엘백성의 반역에 대한 화를 표현한것인데 왜 므리바의 행동만 다른결과와 평가를 받은건가요?
므리바에서 모세의 행동은 분노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이 명확하게 들어가있습니다. 그가 분노하더라도 선을 지키면서 했어야 했는데, 모세는 선을 넘었습니다. 그것이 명령대로 하지 않았다는 데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반석을 가리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그 행동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까지 자신의 분노의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반면에 십계명 돌판을 던져서 깨뜨린 것은 던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습니다. 물론 던지지 말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이 구체적으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십계명 돌판을 던져서 깨뜨린 것은 언약이 깨졌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것인데,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것입니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던져서 깨뜨린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인해서 언약이 깨졌다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 것입니다.
오현주 10. 15. 오전 10:52
1. 언약궤가 군대보다 약 900m(2천 규빗) 앞서 갑니다. 100미터만해도 먼거리인데, 왜 이리 멀게 떨어져서 가게하신걸까요? 2. 사흘(1:11; 2:16, 22; 3:2)이 반복되어 나오고, 학습자료에는 준비와 기다림의 구조를 만든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정탐꾼들이 숨어있는 사흘에 대한 의미가 잘 와닿지는 않습니다. 라합에게 들은 말을 꼽씹으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였을까요? 사흘에 대한 의미가 우리들의 삶에 적용을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에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먼저 앞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사장들이라고 해서 가봤던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에 그들이 백성들을 인도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같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운반자들이 백성들을 이끌게 됩니다. 그런데 왜 2천 규빗인가? 거기에 대해서 명확하게 나온 게 없습니다. 레위인들의 성읍을 그 주위로 2천규빗을 세서 그안에것을 갖게 했습니다. 또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갈 수 있는 거리를 2천규빗으로 했습니다. 그런 연관성은 있지만, 정확하게는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들과 일반백성들과의 거리감은 중요한 개념입니다. 함께 있기 어렵고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거룩함과 세속성의 거리이기도하고, 리더들이 백성들과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기도합니다. 거리가 있어야 그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있습니다.
2. 사흘은 출애굽할 때 광야로 사흘길을 가서 제사를 지낸다고 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흘길이 아닙니다. 더 오랜시간이 걸리지만, 사흘길이라고 표현되어있습니다. 이 사흘은 상징적인 숫자로 봐야합니다. 실제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이 완전수로 쓰이기 때문에 온전한 거리라고 해석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정탐꾼들의 기다림의 시간도 3으로 표현해서 온전함으로. 연결하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예수님의 죽으심이후 사흘만에 살아나신 것도 마찬가지로 사흘은 온전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사흘이 지나면 사람은 절대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